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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야기

기록적 인생

 

모텔방을 전전하는 와중에도 항상 들고 다니는 일기장/가계부/차계부 '_'

 

디에도 무엇에도

쉽게 적응 못하는 형편의 성격인데

소싯적부터 뭔가 적는 것은 곧잘 했.

 

기부터 시작해 가계부 따위의 시시콜콜한 일상의 것들과

백일몽에 빠져 있는 동안에는

소설이나 시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형식의 글을 쓰기도 하고,

그 밖에

굳이 열거하기 귀찮은 많은 것들을,

시킨 사람도 없는데

거르면 찜찜한 부담감으로

때로 의무감으로,

하지만 꼴릴때 꼴리는대로 자유롭게 쓴.

 

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기록한 민족의 후예인지라,

앓고 있는 고혈압의 증상처럼

그 역시 본태성 행동양식인가 싶기도 하.

 

른들 말씀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그러나 생물학적 관점에서 생물의 존재 이유는 명료하다.

종족번식.

아니다. 이건 내가 지독한 개인주의자라서 그런 건 아닌데,

종족이나 공동체의 운명은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우리의 유전자가 아닌 내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존재한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나서는

내가 유전자를 남기기 위해 존재하는지

나를 비롯한 숙주들을 거치며 유전자가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차원적 나라는 인간의 존재 이유는 

그렇다는 말이.

 

업 특성상 같이 일하는 사람이 곧잘 바뀐다.

사람이 바뀌어도 묻는 말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름 나이 사는 곳.

조금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면 호구조사까지 진도가 나간다.

한 번은 결혼했냐는 질문에 아직 안 했다고 답했더니

안 한 거냐 못한 거냐 질문이 되돌아왔다. (이건 뭐)

더 젊은 시절의 나는 자발적 비혼주의자인 줄 알았고

안 했다는 대답이 당당까지는 아니어도 부끄럽지는 않았는데

나이 서른이 훌쩍 넘어서 안 했는지 못했는지를 가늠질 해보니

부끄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당당하게 안 했다고는 못하겠다. 

그 말이 그 말인가

안 한 것과 못한 것의 구분은 쉽다.

하고 싶으면 내일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 안이고

하고는 싶은데 이래저래 걸리는 게 많아서 할 수 없으면 못이다.

아, 그러고 보니 나는 결혼을 못하고 있는 것이 맞.

 

다지 진지하지는 않게, 그냥 어쩌다 문득

이 기록적 인생의 (기구한 인생 아님;) 이유가 궁금할 때가 있다. (있었다.)

생각의 끝에 도달한 결론은

생물은 죽기 전에 뭔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

그것이 자손이건 이름이건 다른 무언가이건 그렇다.

본의 아니게 일반적인 것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나는

그래도 남기고 싶은 의지는 남아 있어서 

이런 기록적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인과라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기록한 사관들은 모두 고자였기 때문에

그처럼 방대한 사료를 남긴 것이라는 가설도 신빙성 있어 보인다.

..

아 고자는 환관이었..

 

래서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블로그를 자식처럼 키우겠습니.